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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정 장편소설 2013년 10월 168쪽 145*210mm 250g ISBN : 9788954622554
주의 :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혹평을 포함함.
‘가슴 뛰는 소설’의 ‘앓던 모든 것’이 훌륭해서 같은 저자의 것을 구해 읽은 것인데, 같은 저자가 맞나 싶을 정도다.
이런 나를 잘 아는 할머니는 비겁한 사람이 쓸데없는 생각을 잘하는 법이라고 했었다.
─ 공룡처럼 거대해지다가 언젠가는 '펑'하는 소리와 함께 멸종하고 말거야. ─ 뭐가? ─ 더 빠르고 더 부유하게 살고픈 사람들. ─ 다 그렇게 살고 싶어하지 않아? ─ 사람은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기를 지킬 줄 알아야 돼. 집회현장에서 들려오는 북소리가 내 마음을 자극했다. 율이가 대형마트에서 일한다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할머니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차라리 잠에 빠져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잠을 자야 노인이 될까. 쓸데없이 싱그러운 청춘이 성가셨다. 단번에 나이를 먹어 안타까움도 그리움도 없는, 밟으면 바삭, 하고 소리가 나는 노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집들이 서로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산골에서 매일 새벽 소리없이 일어나 밭을 매고 가축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변화 없이, 똑같은 날을 사는 노인이 되고 싶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과일만 주워 먹고 수십 년간 친구를 만나지도 않고 살다가 죽은 후에는 근처 가까운 산에 묻혔으면 좋겠다.
예전에 읽은 홍진경씨의 글 중에 비슷한 것이 있다.
흰 쌀밥에 가재미얹어 한술뜨고 보니 낮부터 잠이 온다. 이 잠을 몇번 더 자야지만 나는 노인이 되는걸까. 나는 잠이들며 생각한다.
다시 눈을뜨면 다 키워논 새끼들이랑 손주들도 있었으면 좋겠다. 수고스러운 젊음일랑 끝이나고 정갈하게 늙는일만 남았으면 좋겠다.
그날의 계절은 겨울이였으면 좋겠다. 하얀눈이 펑펑 내려 온통을 가리우면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새벽 미사에 갈 것이다.
젊은날 뛰어다니던 그 성당 문턱을 지나 여느날과 같은 용서를 빌고 늙은 아침을 향해 걸어 나올 때 그날의 계절은 마침 여름이였으면 좋겠다.
청명한 푸르름에 서러운 세월을 숨기우고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바삭한 발걸음을 뗄 것이다.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홍진경씨가 백배는 잘 썼다.
그녀가 불판에 고기를 올리며 흰 얼굴을 조금 붉힌 채, 배시시 웃었다. 율이 얘기를 하며 이런 식으로 웃는 여자들을 나는 몇 번이나 봐왔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 꼬리를 흔드는 이름 모를 강아지처럼, 하늘하늘 공중을 떠돌다 불현듯 손바닥 위로 떨어진 봄날의 벚꽃잎처럼 다정하고 아름다웠다.
진부하고 전혀 아름답지 않다.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내용인데 뭐가 문제일까. 감정을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내서인가. 수식어가 진부해서인가.
‘목뼈를 서로 눌러준다’—는 행위도 그닥. 이상하지도 않고 흔하지도 않아서인가. 공감도 안되고. 무엇이 황정은을 위대하게 만드는가.